시편 137편 1-9절 │ 생명의 삶 큐티 │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눈물을 병에 담으신다면…
시편 137편 1-9절 큐티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눈물을
병에 담으신다면 그 양이 얼마나 될까?
올해 참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 묵상을 쓰면서도,
1절 말씀 하나에 눈물이 흐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137:1
아픔, 서러움, 두려움, 자책감, 회개하는 마음,
그리고 자포자기하는 마음까지.
힘들어서 울고
감사해서 울고
다시 힘들어서 또 울었습니다.
오늘 말씀 속 시편 기자는
적국의 포로가 되어
억지로 노래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차라리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다고 합니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시137:2
망하고 나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일용직 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이른 아침 인력사무소에 가서
이력서를 쓰는데
좋은 학교, 좋은 경력이 오히려 부끄러워
학력과 경력을 지우고 적었습니다.
이력서를 내고 현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데
하필 제가 타야 할 버스 바로 뒤에
서울대 셔틀버스가 서 있었습니다.
혹여라도 아는 사람과 마주칠까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걸었습니다.
한참 어린 사람이 비효율적으로 일을 시켜도
“네, 네” 하며 지시를 따라야 했고,
주는 밥을 먹고 주는 돈을 받아야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서울로 오는 셔틀버스가
저를 두고 떠나버려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습니다.
녹초가 된 몸으로
편의점 앞을 지나는데
시원한 콜라 하나 마시고 싶었지만
돈을 아끼려 그저 지나쳐야 했습니다.
서울 시내를 지날 때
말끔한 직장인들을 봐도 마음이 무너지고,
버스 창밖의 다정한 커플을 봐도 마음이 무너집니다.
재기할 가능성이 점점 희미해 보일 때
제 마음은 더 크게 무너져 내립니다.
저는 기뻐할 수 없는데
예배 중에 “기뻐하라”는 찬양이 나오면
저는 조용히 버드나무에 수금을 겁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시편 기자와 제가
버드나무에 수금을 거는 이유가 다릅니다.
시편 기자는
오직 하나님께만 찬양을 드리기 위해
바벨론 정복자의 요구를 거부하며 수금을 걸었지만,
저는 마음이 기쁘지 않아
찬양을 부를 수가 없어서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핵심이었고,
저는 제 상황과 힘든 마음이 핵심이었습니다.
저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전자공학과 경제학을 공부했고,
경제 데이터 분석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재주’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 재주는 접어두어야 합니다.
그동안 쌓아 온 학력과 경력을 더 이상 쓸 수 없어,
어쩌면 이제는 저의 재주를 잊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137:5-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시편 기자는 예루살렘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오른손이 재주를 잃고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시편 기자와 저의 고백이
비슷한 듯하나 본질적으로 다름을 보게 됩니다.
지금 제 상황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어제도 그저께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제 마음이
온통 ‘상황 해결’에만 쏠려 있었기에
그것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있었을 뿐입니다.
비록 어제는 그러지 못했지만,
내일부터는, 그리고 앞으로는
제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찬양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겠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아시는 주님
제 마음이 제 뜻대로 잘 바뀌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 찬양하는 기쁨을 잊지 않게 하여 주세요.
저의 우선순위가 예루살렘이 되도록,
저를 도와주세요
저를 변화시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