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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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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한다

Daily Bible Devotionals & Prayers

석양 아래 거대한 협곡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의 실루엣, 고난 중 시편 105편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영적 광야의 시각화

[시 105:1-22] 절벽 끝에서 묻습니다,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

Posted on 4월 26, 20265월 17, 2026 By Ryu
시편 105편 1-22절을 묵상하고 작성한 생명의 삶 큐티입니다.

말씀묵상•Devotional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
April 26, 2026
시105편1 22
시 105편 묵상: 절벽 끝에서 하나님의 행적을 선포하다

1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3가지 동사를 사용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1) 감사하고
(2) 불러 아뢰며
(3) 알게 할지어다

이번에 묵상을 하면서
시편 105편에 대한 자료도 찾아보고
원어도 자세히 살펴 보았는데

이 각각의 동사에는
심오한 의미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시105:1

(1) “감사하고”는
히브리어로 “הוֹדוּ” 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손을 뻗다, 손을 뻗어 지목하다”
라는 “יָדָה (야다)” 어근에서 파생된
사역형 복수 명령형 동사입니다.

“손을 뻗어 지목하다”라는 어근이
어떻게 “감사하라”는 의미의 동사가 되었을까?

바로 여기에
당대 이스라엘 백성을 비롯한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이
응당 가져야 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히브리어 “יָדָה(야다)”는
“손을 뻗다”라는 신체 동작에서
“손을 뻗어 무언가를 가리키는”행위로 의미가 파생되었는데

공적인 자리에서 “이것은 사실이다”라고
손을 뻗어 가리키며 시인하는 행위
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죄를 향하여 손을 뻗으면
“내가 이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시인하는 행위가 되고

하나님의 행적을 향해 손을 뻗으면
“이 구원과 기적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고 시인하는 행위가 됩니다.

그래서 구약에 어떤 구절에서는
“죄를 아뢰고”, “죄악을 자복하고”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 모든 죄를 아뢰고…”

레5:5, 레16:21

다른 구절에서는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여호와께 감사하며” 등으로 사용됩니다.

”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

왕상8:35, 대상16:8

즉, “여호와께 감사하고”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이성적으로 인정하고
외부를 향해 손을 뻗어
사람들 앞에서 인정하라는 명령어 입니다.

(2) “불러 아뢰며”는
히브리어 “קִרְאוּ בִשְׁמוֹ (키르우 비쉬모)”가 사용되었는데

‘키르우’는
“소리내어 선포하라”라는 명령형이고

‘비쉬모’는
“그의 이름으로/ 그의 이름을”이란 뜻입니다.

이는 사적인 차원에서
개인적인 간구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내어 선포
하라는 의미입니다.

(3)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에서
“알게 할지어다”는 “הוֹדִיעוּ,(호디우)”인데,

단지 이스라엘 회중이 아는 것을 넘어,
만민들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알도록 하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시편 105편 1절은
개인적이고 내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분명한 역사에 대한 선포
이며
세계 만민을 향한 공적인 외침에 대한 명령입니다.

신기하게도,
시편 105편 1절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한 구절이 역대상 16장에 있는데,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올 때,
다윗이 이스라엘 민족과
감사 찬양을 선언하는 내용입니다.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대상16:8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다윗 왕조에서 이스라엘은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습니다.

그 역사를 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주께서 행하신 일(Fact)을 시인하며
열방을 향해 선포하며 부른 찬양이 바로 역대상 16장 8절이며

이를 바탕으로 기록된 것이
지금 제가 묵상하는
시편 105편 1절입니다.

무거운 철퇴와 사슬에 묶인 채 절벽 끝에서 고개를 숙이고 절망하는 남자의 실루엣. 감당하기 힘든 재정적 압박과 막막한 미래를 상징하는 어두운 밤의 풍경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절벽 끝의 현실

저는 이 새벽에 말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역대상 16장 8절의 상황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떠돌며
1세대가 광야에서 소멸하던 시점도 아니고

다윗이 사울왕이나 압살롬을 피해
도망다니는 시점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가나안을 차지하고
다윗 왕조가 번성기를 누리며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무사히 옮겨오는
그 역사적인 날에 백성과 함께 부른 감사 찬양이었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당장
다음주까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는데,
제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5월 이후로는 수입이 끊겨
하다못해 일용직 일을 하더라도
매달 처리해야 하는 문제를
일용직으로는 아예 감당할 수도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이제는 절벽이라고 느끼며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시도를 해보아도
반대로 상황은 더 절벽 끝으로 내몰리니…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이틀전에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가 위독하시다고…”

저희 가족 중에
저의 어머니만 몇년 전에 세례를 받으셨고
할머니, 아버지, 동생은 아직 교회에 가지 않고,
대부분의 친척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들이 살아 있을 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집안의 장손인
제가 이러 있으니…

그래서 그동안 마음 속으로
이런 날이 오지 않기를

내 상황이 빨리 나아져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가지고
당당하게 가족과 친척들 앞에 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정말 저는 바라고 바랬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소식을 듣고는
한쪽 방 구석에 무릎 꿇고
제가 어찌해야 하냐고
제가 어찌해야 하냐고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역대상 16장 8절의 상황은
분명히 다윗이 ‘고난’ 가운데 찬송한 내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목격하고
그 역사적 사실을 세계 열방에 선언한 찬송입니다.

따라서
지금 저의 상황에는 맞지도 않고
한편으론 부러운 이야기이며
멀게만 느껴지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하나의 반전이 있습니다.

역대상 16장 8절의 상황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다윗의 찬송이지만

역대상 16장 8절이 ‘작성된’ 시기는
다윗의 때가 아닙니다.

다윗 왕조로부터
수백년이 흐르고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가
삶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이후에 폐허가 된 이스라엘에 귀환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회복하며
작성된 글이 역대상입니다.

삶이 무너지고
다가오는 문제 앞에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다”
라고 당당하게 고백하기는 커녕
친척들 앞에 서기에도 초라한 모습으로

시편 105편 1절과
역대상 16장 8절의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 앞에서
제가 주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저의 삶에도
주께서 행하여 주세요.

다윗이 기뻐하며
주께서 행하신 일을 선포한 것처럼

폐허가 된 이스라엘로 귀환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과 행하신 일을 기억하며
말씀을 기록한 것처럼

지금 저의 삶에도
주께서 행하신 일로 가득하게 하여 주세요.

가족들 앞에
실패자로 그저 버티고 있는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으로
회복된 자의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하나님 은혜의 역사와 사실을
친족과 만민 앞에서
제가 선포할 수 있도록

주님,
저를 긍휼히 여기사 회복하여 주세요.

더 늦기 전에,
속히 할머니와 가족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도록
저의 상황과 걸음을 인도하여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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