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장 1-11절 큐티│생명의 삶 3월 6일│나귀 위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11절을 묵상하고 작성한 생명의 삶 큐티입니다.
나귀를 타신 예수님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마태복음 21장 7절
마태복음 21장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입니다. 흔히 “겸손한 왕의 입성”이라고 불리는 이 장면은, 정말 예수님의 겸손함을 잘 보여줍니다. 생명의 삶 QT(큐티) 책 제목도 “예언을 성취한 겸손한 왕의 행진”이었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겸손하셨다. 나도 겸손하게 살아야지”라는 단순한 묵상으로는, 이 말씀이 제 마음을 움직이거나 삶을 바꾸는 데까지는 가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을 곱씹고 또 곱씹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위엄을 드러내는 백마나 마차가 아닌, 나귀를 타셨을까?
제가 국제협력요원으로 이집트에서 군 복무하던 시절, 우리나라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 중 이집트에 잠시 머무셨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때 소집되어 대통령 일행을 보조하는 일을 했습니다.
장관, 수행원, 기자들, 경호 인력, 그리고 대통령의 차량까지… 이집트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수십 대의 차량이 동시에 도로를 통제하고 빠른 속도로 이동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많은 차량 중 대통령이 탄 차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좋은 차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소탈한 대통령이라도 국격을 대표하는 순방 중에는 가장 좋은 차를 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만물의 주인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허름한 나귀를 타십니다.
차라리 걸어서 가시지…

이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을 떠올리면,
아마도 화가는 파스텔 톤으로 따뜻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로 표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나귀를 타 보면 꽤 우스꽝스럽고, 전혀 멋있거나 위엄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그 순간 예수님 곁에 제가 있었다면
“예수님, 차라리 걸어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하고 말씀드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알고 있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도 알고 있으니 이 장면을 “겸손한 왕의 행진”이라 말할 수 있지만,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이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예수님은 왜 나귀를 타셨을까?
왜 이렇게까지 하셨을까?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오늘 오후 산책 중에, 혹은 1년 후 문득 그 이유가 깨달아질지도 모릅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많은 성도들이 서울 어디 멋진 교회나 건물에서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케이크를 준비하고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르고, 예수님 대신 촛불도 끕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이 그날 강릉에 계신데
사람들이 서울에 모여 생일을 축하한다면…
뭔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그날은 부산에 계신데
대전에 모여 축하를 한다면…
그것도 이상합니다.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21장 말씀에서,
예수님이 왜 굳이 나귀를 타고 가셨는지 이유는 다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가장 낮은 곳,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면,
예수님이 안 계신 엉뚱한 곳이 아니라
예수님이 계신 바로 그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높아져 있을 때는
예수님을 만나기 어렵지만
내 마음이 낮아졌을 때 비로소 예수님을 뵙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저를 만나고 싶으셔서,
지금의 실패와 어려움을 통해 높은 자리에 있던 저를 낮은 자리로 부르신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여건이 허락된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곳에 가서 그곳에 계신 예수님을 뵙고,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낮은 곳이라 할지라도 그 자리에 있는 제 마음이 높다면 예수님을 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낮은 자리에서
내 마음도 낮아졌을 때,
비로소 나귀 위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많이 만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